2022 수능/문학

김채원 <겨울의 환(幻)>

의대 가고싶은 샐리 2021. 6. 18. 15:52

- 부제 : 밥상을 차리는 여인 ( 따뜻한 사랑을 건네는 존재라는 뜻 )

- 3대의 여성 서사 ( 3대가 모두 시집 갔다가 돌아옴.. )

- 나 ( 삶에 대해 자각해 나가는 43세 중년 여성 : 어머니의 삶을 이해 )

- 의식의 흐름 기법 : 고백적 어조

-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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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가는 사람의 떨림이란 좀 어색하지 않습니까. 늙어 가는 사람의 떨림이라기보다 늙어 가는 여자의 떨림이란 말이 훨씬 자연스러운 것이고 제가 스스로를 언제나 사람이라고 느끼던 것에서 저의 성을 찾아 여자가 된 것이, 그 자각이 이제라도 기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비로소 여자에 눈떴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자각이 나 하나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내 어머니와 할머니, 이분들은 내가 실제 보았던 인물들이고, 말로만 들었던 증조할머니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선조의 여자들까지도 생각해 보게 되고, 인맥을 통해 면면히 흐르는 여자로서의 숙명 같은 것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자궁을 가진 여자로서의 숙명감,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로서의 모(母)라는 의미, 결연히 인생과 마주한 여자로서 서야 하는, 또한 그중에서도 동양의 여자, 소나무가 크고 있는 지역의 여자, 이런 의미들이 밀려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은 복 받을 만한 서구의 자연, 그리고 그들의 깨어 있는 문화가 만들어 놓은 개인주의, 저의 한때 그 개인주의에 공감하고 그를 따르려 했습니다만 서구의 개인주의와 동양의 미덕과는 어쩔 수 없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그런 깨달음이 망연히, 그러나 어떤 확신감을 가지고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양에서만 보던 서양의 잣나무와 솔바람을 품어 안느 소나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지각, 우리가 이 시간 그리고 동양권인 이 공간 속에 태어났다는 것은 하나의 운명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중략)
 집에는 화투 손님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인원은 대개 두 사람이나 세 사람, 섰다가 아닌 민화투로서 작은 푼돈이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판이 큰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화투를 짝짝짝 다듬어 치다가 늦은 저녁때가 되면 다락문을 열고, 부엌에서 떨고 있는 동생과 내게 소리치셨습니다. 다락문을 열어야만 부엌에 그 소리가 잘 들리기 때문입니다.
 “얘 가혜야, 왜 아침에 먹던 된장찌개 있잖니? 거기다 된장을 한 숟가락 떠다가 더 풀고 두부 한 모 썰어 넣고 마늘 다져 넣고 보글보글 끓여라. 그리구 며루치도 좀 집어넣어라. 그래서 밥하구 상을 차려서 좀 가지고 들어와라, 응. 김치는 새것을 썰어라.”
 부뚜막에서 졸 듯이 쪼그리고 앉아 연탄 냄새를 맡고 있던 동생과 나는 비로소 부스스 몸을 일으켜 어머니가 지시한 대로 막숟가락과 양재기를 하나 가지고 된장을 푸러 어두워진 장독대로 더듬어 갑니다.
 그때 우리가 느낀 것은 손님 앞에서 큰 소리로 부엌에다 대고 소리치는, 교사까지 지낸 어머니의 교양에 대한 반감이었을까요. 더구나 신비감도 없이 아침에 먹던 된장찌개에다가, 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것은 정말 싫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불을 땐 방이라고는 화투 치는 방뿐인데, 아이들이 있을 곳이 없는 데 대한 배려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런 감정들이 뒤엉켜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바로 그 된장찌개를 이제 와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말 그 된장찌개가 맛이 있었더면, 첫째는 우리 집의 장맛이 좋았을 것이고(그것은 어머니의 손이 단 데 연유했을것입니다만, 아니 그보다 할머니가 시골에서 쑤어 오신 메주에 달렸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아침에 먹던, 의 바로 그 먹던에 원인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한번 끓였던 것에다 다시 끓이면 그만큼 재로가 여러 가지 많이 들어간 결과가 되고, 아울러 푹 달우어진 맛이 우러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음식에서 늘 영양가를 우선으로 생각했고, 또 아무리 조금 남은 것이더라도 절대로 버리는 일이 없으므로, 그런 것들이 늘 찌개에 들어가게 마련이어서 두루뭉수리 독특한 찌개 맛을 자아냈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정의 내리듯 생각해 보지만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 항상 음식에 대한 아쉬움을 품고 지냈던 것 같습니다. 즉, 된장찌개에 가장 생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지막에 파를 썰어 넣는 일이 대개 빠져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의 음식에서 항상 그 파와 같은 부분이 빠지는 것입니다.
 음식점에서 장국밥을 처음 먹어 보던 날, 음식점 특유의 그 깔끔한 맛이 후춧가루와 깨소금, 파 같은 양념들에서 오는 것임을 알고, 후춧가루라는 처음 맛보는 양념에 거의 경의마저 품었을 지경이었으니까요. 
 어머니는 왜 후춧가루와 파와 같은 부분을 생략했는가. 가난했던 탓일가. 그 당시는 전후로서 모두들 대강 그냥 끓여 먹고 살던 시절이었다고 생각해 보려 해도, 그 후 이웃집이나 친구들 집이 그런 것들을 점점 갖춘 생활로 변해 감에 비해 우리 집은 항상 그대로였습니다.
 오히려 점점 더 빛을 잃은 뭉뚱그려진 음식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자랑을 제가 시큰둥하게 넘기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까닭입니다. 뿐더러 어머니의 음식이 설혹 맛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늘 우리에게 먹게끔 해 주었던 그런 따뜻한 밥상은 아니었다는 인상 때문입니다. 누구나 늘 따뜻한 손길 같은 것을 그리워하고 있듯이 누구나 다 바로 그 따뜻한 밥상을 그리워하고 있을 것입니다.
 하루 종일 그림자처럼 조용히 일만 하고 있는 여인, 조용히 묵묵히 끝도 없이 일을 하고 있는 여인, 아플 때 와서 손을 얹어 주고 물을 떠다 주고, 그리고 매일매일 밀물처럼 닥쳐오는 세 끼의 밥을 따뜻이 먹게끔 차려 주는 여인이 비치어 옵니다. 대부분의 옛 여인의 모습이 그랬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 기억에 떠오르는 할머니가 그랬으므로 실지 제가 본 생생한 여인의 모습으로 다가듭니다.
 어머니와 저는 그런 여인은 아닙니다. 그런 여인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밥상을 깨부수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솔직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아니, 깨부순다는 표현이 너무 과격하다면 언제까지나 부엌과 밥상에 친해지지 않는다고 할까요. 부엌에서 찬바람 같은 것이 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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