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연계 22

<금 따는 콩밭>, 김유정

땅속 저 밑은 늘 음침하다. 고달픈 간드렛불, 맥없이 푸르끼하다. 밤과 달라서 낮엔 되우 흐릿하였다. 겉으로 황토 장벽으로 앞뒤좌우가 콕 막힌 좁직한 구뎅이. 흡사히 무덤 속같이 귀중중하다. 싸늘한 침묵, 쿠더브레한 흙내와 징그러운 냉기만이 그 속에 자욱하다. 곡괭이는 뻔질 흙을 이르집는다. 암팡스러이 내려쪼며, 퍽 퍽 퍼억. 이렇게 메떨어진 소리뿐. 그러나 간간 우수수 하고 벽이 헐린다. 영식이는 일손을 놓고 소맷자락을 끌어당기어 얼굴의 땀을 훑는다. 이놈의 줄이 언제나 잡힐는지 기가 찼다. 흙 한줌을 집어 코밑에 바짝 들여대고 손가락으로 샅샅이 뒤져본다. 완연히 버력은 좀 변한 듯싶다. 그러나 불통버력이 아주 다 풀린 것도 아니었다. 밀똥버력이라야 금이 온다는데 왜 이리 안 나오는지. 곡괭이를 다시 ..

<화산중봉기(華山重逢記)> 줄거리

* 줄거리 김선옥의 조부인 김완국이 간신의 모함을 받아 적소(謫所 귀양지)로 떠나 죽고 가족들은 고향인 안동으로 낙향한다. 고향에서 지내던 중 김선옥은 절에서 수학(修學 학문을 닦음)하게 되는데, 집에 몰래 내려와 보니 부인의 침소(寢所 사람이 잠을 자는 곳) 사창(紗窓)에 남자의 의관 그림자가 비치는 것을 보고 부인이 불륜을 저질렀다고 오해하고 가출하여 정처 없이 길을 떠난다. 이에 부친인 김 처사는 아들을 찾아 주는 사람에게 가산(家産)의 반을 준다고 한다. 그러자 재산을 탐낸 팔촌 김형옥이 김선옥과 용모가 비슷한 인물을 데려오니 모두 반기나 김선옥의 처(이 씨)만은 가짜임을 알아보고 남편이 아니라고 주장하다가 친정으로 쫓겨난다. 이 일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임금이 알게 되는데, 이에 임금은 진 어사를..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개구리> 줄거리, 김성한

개구리들은 제멋대로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날짐승들이 독수리를 왕으로 모시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얼룩이는 우리도 지도자를 뽑아서 질서를 가진 동물이 되자고 제안하지만 초록이는 이에 반대한다. 사자를 위시한 산짐승들의 떼를 보고는 개구리들은 올림푸스 산의 제우스 신에게 가서 개구리의 지도자를 보내 달라고 한다. 제우스는 개구리의 그러한 생각이 '노예 근성'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난한다. 그러나 개구리들이 계속 지도자를 원하자 보내 주겠다고 한다. 그후 연못에 통나무가 굴러온다. 초록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지도가 아니라, 편의라면서 통나무 위에서 즐겁게 지낸다. 이에 불만을 가진 얼룩이는 다시 제우스를 창아가 개구리의 총의를 조작해서 고하고 황새를 지도자로 데려온다. 얼룩이는 재상이 되어서 개구리들..

<두껍전> 줄거리

여느 날과 다름없이 평화로운 숲속에서 노루 가문의 당주 노인이 생일을 맞이하여 수많은 동물들을 초대했다. 이 때 산군 호랑이는 일부러 초대하지 않았고, 상석에 앉아야 하는 인물을 정하게 되자 평소 상석 자리에 욕심이 많은 여우 노인이 앉으려 하자 모두 반발했고 꾀 많은 토끼가 가장 나이많은 노인이 이 상석에 앉는 것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노루와 여우는 자신들이 천계에서 별을 박았다고 하면 바로 사다리를 만든 건 자신이라 얘기하며 우열을 가리려 하는데... 갑자기 마을 촌장인 두꺼비 노인이 슬피 울기 시작했다. 의아해져 우는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에게는 13명의 결혼한 아들들이 있는데 이 아들들 중 매우 총명하여 자신이 가장 아끼던 장남이 예전에 자신이 키운 나무로 사다리를 만들어 별을 박으러 나갔..

<겨울 나들이> 줄거리, 박완서

중견화가인 남편을 둔 나는 아틀리에에 들렸다가 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남편을 보게 된다. 인물화는 그리지 않던 남편이 딸을 그려주는 모습에 야릇한 질투심을 느낀다. 딸의 초상화를 그려주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연인 같다는 느낌까지 들자 나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남편에게 투정을 부리듯 여행을 갔다 오겠다고 말한다. 딸과 남편은 뜨악하게 보면서도 만류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나는 여비를 두둑이 받고 온천이 많은 곳으로 여행을 간다. 관광호텔의 온천을 전전하다가 아무 버스나 올라타고 이름모를 호숫가에 내린다. 삭막한 겨울만큼이나 황량한 마음을 녹일 곳을 찾다가 허름한 여인숙에 들어가게 된다. 여인숙 아주머니는 지나칠 정도로 고개를 굽신거리며 친절하게 맞이해 준다. 꽁꽁 언 몸을 보더니 안방으로 안내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