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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면앙정가>, 송순

원문 현대어 풀이 无等山 ᄒᆞᆫ 활기 뫼히 동다히로 버더 이셔 멀리 ᄯᅦ쳐 와 霽月峯이 되어거ᄂᆞᆯ 無邊大野의 므ᄉᆞᆷ 짐쟉 ᄒᆞ노라 닐곱 구ᄇᆡ ᄒᆞᆯ머 움쳐 므득므득 버렷ᄂᆞᆫ ᄃᆞᆺ. 가온ᄃᆡ 구ᄇᆡᄂᆞᆫ 굼긔 든 늘근 뇽이 선ᄌᆞᆷ을 ᄀᆞᆺ ᄭᆡ야 머리ᄅᆞᆯ 안쳐시니 너ᄅᆞ바희 우ᄒᆡ 松竹을 헤혀고 亭子ᄅᆞᆯ 안쳐시니 구름 ᄐᆞᆫ 쳥학이 千里를 가리라 두 ᄂᆞ래 버렷ᄂᆞᆫ ᄃᆞᆺ. 玉泉山 龍泉山 ᄂᆞ린 믈히 亭子 압 너븐 들ᄒᆡ 올올히 펴진 드시 넙거든 기노라 프르거든 희디마나 雙龍이 뒤트ᄂᆞᆫ ᄃᆞᆺ 긴 깁을 ᄎᆡ폇ᄂᆞᆫ ᄃᆞᆺ. 어드러로 가노라 므ᄉᆞᆷ 일 ᄇᆡ얏바 ᄃᆞᆺᄂᆞᆫ ᄃᆞᆺ ᄯᅡ르ᄂᆞᆫ ᄃᆞᆺ 밤ᄂᆞᆺ즈로 흐르ᄂᆞᆫ ᄃᆞᆺ. 므조친 沙汀은 눈ᄀᆞᆺ치 펴졋거든 어즈러온 기러기ᄂᆞᆫ 므..

<사미인곡>, 정철

원문 현대어 풀이 이 몸 삼기실 제 님을 조차 삼기시니, ᄒᆞᆫᄉᆡᆼ 緣分(연분)이며 하ᄂᆞᆯ 모ᄅᆞᆯ 일이런가. 나 ᄒᆞ나 졈어 닛고 님 ᄒᆞ나 날 괴시니, 이 ᄆᆞ음 이 ᄉᆞ랑 견졸 ᄃᆡ 노여 업다. 平生(평ᄉᆡᆼ)애 願(원)ᄒᆞ요ᄃᆡ ᄒᆞᆫᄃᆡ 녜자 ᄒᆞ얏더니, 늙거야 므ᄉᆞ 일로 외오 두고 글이ᄂᆞᆫ고. 엇그제 님을 뫼셔 廣寒殿(광한뎐)의 올낫더니, 그더ᄃᆡ 엇디ᄒᆞ야 下界(하계)예 ᄂᆞ려오니, 올 적의 비슨 머리 얼킈연디 三年(삼년)이라. 臙脂粉(연지분) 잇ᄂᆡ마ᄂᆞᆫ 눌 위ᄒᆞ야 고이 ᄒᆞᆯ고. ᄆᆞ음의 ᄆᆡ친 설음 疊疊(텹텹)이 ᄡᅡ여 이셔, 짓ᄂᆞ니 한숨이오 디ᄂᆞ니 눈믈이라. 人生(인ᄉᆡᆼ)은 有限(유ᄒᆞᆫ)ᄒᆞᆫᄃᆡ 시ᄅᆞᆷ도 그지 업다. 無心(무심)ᄒᆞᆫ 歲月(셰월)은 믈 흐ᄅᆞ듯 ᄒ..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파밭 가에서>,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 앉은 석경(石鏡)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 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 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만분가>, 조위

원문 현대어 풀이 천상 백옥경(白玉京) 십이루(十二樓) 어듸매오 오색운 깁픈 곳의 자청전(紫淸殿)이 가려시니 천문(天門) 구만 리(九萬里)를 꿈이라도 갈동말동 차라리 싀여지여 억만(億萬) 번 변화하여 남산(南山) 늦즌 봄의 두견(杜鵑)의 넉시 되여 이화(梨花) 가디 우희 밤낫즐 못 울거든 삼청 동리(三淸洞裏)의 졈은 한널 구름 되여 바람의 흘리 날아 자미궁(紫微宮)의 날아 올라 옥황(玉皇) 향안전(香案前)의 지척(咫尺)의 나아 안자 흉중(胸中)의 싸힌 말삼 쓸커시 사로리라 어와, 이내 몸이 천지간(天地間)의 느저 나니 황하수(黃河水) 말다만난 초객(楚客)의 후신(後身)인가 상심(傷心)도 가이 업고 가태부(賈太傅)의 넉시런가 한숨은 무스 일고 형강(荊江)은 고향이라 십 년을 유락(流落)하니 백구(白鷗)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