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수능/국어 - 고전시가

<벽사창이 어른어른커늘>, <님이 오마 하거늘>

의대 가고싶은 샐리 2022. 9. 30. 11:30

조선 후기에 등장한 사설시조 중 기다림을 노래한 작품들은 부재하는 임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의 자세를 드러내면서도 과장이나 희화화를 통해 그리움과 웃음을 동시에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기다림의 노래는 대체로 임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표현하다가 분위기를 반전시켜 웃음을 유발하거 나, 간절한 그리움을 과장해서 표현함으로써 희화화하고 있다.

 

벽사창(碧紗窓)이 어른어른커ᄂᆞᆯ 님만 너겨 나가 보니 
님은 아니 오고 명월(明月)이 만정(滿庭)ᄒᆞᆫ듸 벽오동(碧梧桐) 져즌 닙헤 봉황(鳳凰)이 ᄂᆞ려와 짓 다듬ᄂᆞᆫ 그림재로다 
모쳐라 밤일싀 만졍 ᄂᆞᆷ 우일 번 ᄒᆞ괘라

[C]는 임이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어긋난 후의 심적 고통을 남의 비웃음을 피했다는 유치한 안도감 으로 전환한 사설시조이다. 이 작품은 임의 부재로 인한 화자의 부정적인 정서를 착각 모티프를 통해 유발된 웃음으로 이완시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이완은 온전히 평온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움에 웃음을 더해서 잠시나마 심적 고통을 누그러뜨리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님이 오마 ᄒᆞ거ᄂᆞᆯ 저녁밥을 일 지어 먹고 
중문(中門) 나셔 대문(大門) 나가 지방(地方) 우희 치ᄃᆞ라 안자 이수(以手)로 가액(加額)ᄒᆞ고 오ᄂᆞᆫ가 가ᄂᆞᆫ가 건넌산(山) ᄇᆞ라보니 거머흿들 셔 잇거ᄂᆞᆯ 져야 님이로다 보션 버서 품에 품고 신 버서 손에 쥐고 곰븨님븨 님븨곰븨 쳔방지방 지방쳔방 즌 듸 ᄆᆞ른 듸 ᄀᆞᆯ희지 말고 워렁충창 건 너가셔 정(情)엣 말 ᄒᆞ려 ᄒᆞ고 겻눈을 흘긧 보니 상년(上年) 칠월(七月) 열사흔날 ᄀᆞᆯ가 벅긴 주추 리 삼대 ᄉᆞᆯ드리도 날 소겨다 
모쳐라 밤일싀 만졍 ᄒᆡᆼ여 낫이런들 ᄂᆞᆷ 우일 번 ᄒᆞ괘라

[D]는 임을 애타게 기다리는 화자의 조바심과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행동이 장황한 수사를 통해 적 나라하게 드러난 사설시조이다. 이 작품도 [C]처럼 착각 모티프를 활용하고 있다. 다만 [C]의 화자 는 다소 점잖게 상황을 확인하는 데 비해, [D]는 경박해 보이는 화자의 범속한 행위를 구체적으로 그 려 내고 있다. 저녁에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임이 오는 것을 기다리는 상황은 사물이 흐릿하게 보이 는 시·공간적 배경과 관련되어 화자가 착각을 일으키기에 적당한 조건을 제공한다. 여기에 최대한 빨리 임을 만나고 싶어서 조바심이 난 화자의 태도가 결합하여 화자의 착각이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있다. 임이 돌아오리라는 기대가 어긋난 후 스스로 느끼는 부끄러움의 정서를 종장에서 희화화된 상 황으로 드러내는 것은 [C]와 유사한 발상이다.

그리움에 웃음이 섞이는 사설시조들은 공통적으로 화자가 자신의 갈망이 충족되기를 간절히 원하 지만, 그 갈망이 충족되기보다는 방해받고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삶의 진실을 반영한다. 물 론 갈망에 휩쓸리는 과장된 인간의 모습은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때 우스꽝스럽고 애처로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설시조의 과장은 인물의 열등함을 부각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인간의 자연스러운 성정 을 잘 드러내어 공감을 얻는 효과가 크다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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